조선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이 정교한 기상청 예보나 위성·레이더 관측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경과 어업을 위해서 날씨를 가늠할 필요가 컸기에, 여러 가지 관측 도구, 전통 지식, 천문학적 관측 등을 통해 날씨를 예측하려고 했습니다. 다음은 조선시대에 날씨를 예측하거나 관측한 대표적인 사례와 방법들입니다.

1. 기상 관측 도구와 제도
- 측우기(測雨器, ‘청우기’라고도 불림)
-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기기로, 세종 23년(1441년)에 발명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 전국 여러 지역에 설치하여 강우량을 관측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농사 시기와 치수(治水) 정책 등에 참고하였습니다.
- 해시계(해시의, 앙부일구 등), 물시계(자격루), 풍향/풍속 관측
- 해시계나 물시계를 직접적인 “날씨 예보” 도구로 보긴 어렵지만, 시간 측정과 더불어 해의 위치, 그림자 길이 등을 관찰하면서 기상의 변화를 유추하기도 했습니다.
- 바람의 방향과 세기도 날씨 변화를 감지하는 중요한 척도였고, 자연 현상을 관찰하며 풍향·풍속 변화를 기록해 예측 근거로 삼았습니다.
- 천문 관측 시설
- 세종 때 건립된 관측 시설(간의대 등)과 혼천의, 간의, 규표 같은 천문 관측 기구로 해·달·별의 운행을 측정해 농사철이나 명절(절기)을 정했습니다. 날씨 예보와 직접 관련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천문 현상의 변화를 통해 대기 변화를 어느 정도 연결 지어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2. 농서와 풍속지의 기상 관련 기록
- 농서(農書)와 목민심서 등 행정 지침서
- 농사에 필요한 날씨(비, 바람, 해, 서리, 가뭄 등)에 대한 옛사람들의 경험과 속담, 징후 관찰법을 기술했습니다.
- 예: 비가 오기 전 하늘의 모양, 구름이나 바람의 양상, 새·곤충·동물의 행동 변화를 통해 날씨 변화를 예측하는 내용.
- 조선왕조실록
- 왕실 및 관청에서 날씨와 관련해 보고된 내용이 주기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날씨를 예측하는 ‘기상 보고’와는 거리가 있지만, 당시 관측된 날씨의 변동이나 기후 이상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 간접적으로 조선시대의 기상 관측 체계와 인식 수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3. 민간에서의 날씨 징후 관찰
- 속담과 격언
- “개미가 집을 높이 쌓으면 큰비가 온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 등 여러 속담을 통해 자연계 동물·곤충의 행동 변화를 예측 신호로 삼았습니다.
- 이러한 관찰들은 세밀한 과학적 근거라기보다 오랜 세월 쌓인 경험적 통계에 가깝습니다.
- 태양·달·구름·바람 등 관찰
- 태양이나 달 주변에 생기는 ‘무리(환일·환월 현상)’를 보고 비나 눈이 올 조짐으로 해석하거나, 구름의 색깔과 움직임을 통해 기상 변화를 짐작했습니다.
- 강한 바람, 돌풍이 불기 전 나타나는 이상음(윙윙거리는 소리 등)이나 바람결의 변화를 관찰해 다가올 폭풍우를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 천문 현상과 절기
- 24절기를 기준으로 “입춘 뒤 얼마나 춥고, 우수에는 얼마나 비가 오는가” 등을 전해 내려오는 경험칙으로 판단했습니다.
- 절기 전후 발생하는 기상 패턴(늦서리, 늦장마 등)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올해 날씨를 미리 가늠하려 했습니다.
4. 한계와 의의
- 조선시대에는 오늘날처럼 “주 단위” 혹은 “시간 단위”의 날씨 예측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 관측 기구나 천문 시설을 통해 어느 정도 관측과 기록을 제도화했지만, 이것이 체계적인 “예보 시스템”이라기보다는 경험적·관료적 보고에 가까웠습니다.
- 그럼에도 ‘측우기’와 같은 실용적 과학기구 발명, 전국적인 강우량 기록체계 구축 등은 당시로서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앞선 과학적 성과로 평가받습니다.
- 민간에서는 농사를 지어야 하고, 극심한 기후 변동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풍속·속담 등을 통해 습득된 날씨 징후가 널리 활용되었습니다.